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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수기 도시에서 본 돈의 흐름

by 빨라요 2025. 12. 15.

비수기의 도시는 소리가 낮다. 성수기에는 여행객으로 가득 차 있던 골목이 조용해지고, 기념품 가게의 불은 오후가 되기도 전에 꺼진다. 문을 연 가게보다 ‘임시 휴업’ 안내문이 더 눈에 띄는 시기, 도시는 잠시 숨을 고르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이 고요함 속에서도 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방향과 속도가 달라질 뿐이다. 성수기에는 돈이 빠르게 들어와 빠르게 나간다. 숙박, 음식, 교통, 기념품까지 소비의 흐름이 외부에서 내부로 몰려든다. 반면 비수기에는 그 흐름이 눈에 띄게 느려진다. 관광객이 줄어든 자리에는 지역 주민의 소비만 남고, 이 소비는 대체로 꼭 필요한 것에만 머문다. 불필요한 지출은 사라지고, 생활비 중심의 단단한 흐름만 유지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기에 돈의 이동 경로가 더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이다. 어느 가게가 버티고, 어느 가게가 문을 닫는지, 어떤 서비스가 줄어드는지가 그대로 드러난다. 화려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지역 경제의 체력과 의존 구조가 명확해진다.

비수기의 도시는 돈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이때 남아 있는 소비는 도시의 본질에 가깝다. 관광이 빠져나간 후에도 유지되는 가게와 관계, 그리고 생활의 리듬은 그 도시가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조용한 거리에서 보이는 돈의 흐름은 느리지만, 그래서 더 솔직하다.